[이지영의 유토피아] 아픈데 애써 '괜찮다'고 하는 듯한 요즘 금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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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의 유토피아] 아픈데 애써 '괜찮다'고 하는 듯한 요즘 금융시장
  • 이지영 기자 ljy@cstimes.com
  • 기사출고 2024년 05월 10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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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이지영 기자 | 배우자가 최근 대학병원에서 정밀 건강검진을 받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행히 건강하다는 결과를 받긴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인데 그렇다고 모든 면에서 건강한 정상 상태인 것이냐 하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러저러한 수치가 높으나, 변곡점을 넘진 않았으므로 주의해야 하는 병(病)의 직전 단계. 겨우 정상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아직 아무런 큰 병은 아니라는데, 위험 수치를 넘은 것도 없다는데 뭐가 어떻냐는 식이다. 같이 사는 입장으로선 기가 막힐 노릇이다. 모든 수치가 이렇게 높은데 괜찮다니. 아직 위험한 단계를 넘지 않았으니 그만이라니? 그럼 모두 비정상이고 당장 입원하고 수술해야 한다고 할 때가 되면 건강을 관리하겠단 건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해야 될지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의 금융시장을 바라보는 마음이 이상하게 비슷하다.

대부분의 경제 데이터 수치가 불안하게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아직 괜찮다는 분위기다. 역시 아직은 큰 일이 나지 않았으므로 괜찮다는 것일까. '괜찮다'는 말은 이상하게 불안을 내포한다. 괜찮다는 말이 '안 괜찮아도 괜찮은 걸로 하자'는 합의처럼 들릴 때가 있어서다.

최근 은행권에선 개인사업자의 연체가 크게 늘어나 1조원을 돌파했다. 1개월 이상 연체된 개인사업자 대출 총액은 올해 1분기 말 기준 1조3560억원으로, 이는 지난해 1분기 말보다 37.4%(3690억원)나 급증한 수치다. 고금리 상황이 길게 이어지면서 대출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개인 사업자 대출 총액은 2.4% 증가했는데, 연체는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바람에 5대 은행 평균 연체율은 0.31%에서 0.42%로 뛰었다.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늦춰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연체 속도 역시 더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가계부채 규모 역시 GDP(국내총생산) 규모보다 작아졌다곤 하지만 조사 대상국 가운데 여전히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부채 증가세는 여전했다. 기업대출 평균 연체율은 지난해 1분기 0.28%에서 올해 0.33%로 1년 만에 0.05%가 증가하는 등 기업대출이 가계대출보다 더 빠른 부실 속도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경우, 총선 전후로 기자간담회 자리마다 기자들은 PF가 '심각한 위기'라고 질문하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우려할 상황이 아니다'라는 답변이었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7일 외국계 투자은행과의 화상회의에서 한국 금융 시장이 확고하게 안정된 상황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부동산 PF 대출 등 연체율도 우려할 상황이 아니며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최근 금융당국은 부실 PF 사업장 정리에 나서기로 하는 등 드디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음주에 PF 정상화 방안에 대해 발표할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막바지 세부 조율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전해진다.

주요내용은 신규자금 투입, 사업장 정리기준의 강화와 사업성이 없는 경우 경·공매를 활성화 하는 방향 등의 가닥이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금융권에선 술렁이는 분위기가 잠재워지지 않는 모습이다.

사업장 정리기준을 강화하게 될 경우, 은행권이 문제가 아니라 전 금융권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저축은행과 증권사까지 전체 금융권에서 충당금 적립뿐만 아니라 손실 규모의 확대도 우려된다는 반응이다. 여전히 고금리 상황에 나아지지 않은 부동산 경기로 인해 신규자금의 투입도 은행권에선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상하게 기시감이 든다. 모든 것이 관리할 수 있는 정상 범위여서 괜찮다는 말은 그래서인지 공허하게 들린다. 금융위기는 이제 시작인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잠재워줄 대책이 필요하다. 국내 기업부채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유사한 수준이라는 분석도 나오는 마당이지만, 그래도 '우려할 수준은 아니므로' 금융시장이 정말 '정상'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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